해미순교성지

가을의 기도

`가을의 기도'

"신이여 
얼굴을 이리 돌리옵소서 
못내 당신 앞에 벌받던 여름은 가고 
기도와 염원으로 내 마음 농익는 
지금은 가을 
노을에 젖어 고개 수그리고 
긴 생각에 잠기옵느니 
여기 이토록 아름차게 비워진 나날

가을엔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신이여 가을엔 
기도드리게 하옵소서 
바람 속에서 
바람에 불리우다 불현 듯 더워오는 눈시울 
주체할 길 바이 없으니 
이제금 홀로인 그분과 나와 
가을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신이시여 가을엔 
사랑하게 하옵소서 
경건히 보다 경건히 
요적의 눈빛으로 마주 바라보는 
계절은 가을 
신이시여 당신과 나 사이에 
그분과 나 사이에 
한 아름의 들국화를 두게 하옵소서 
보라빛 흰빛의 소담스런 국화가 
피어도 있고 
피면서도 있게 하옵소서 
가을은 돌아가는 계절 
푸른 하늘 아래 
나도 몰래 내가 멈춰서는 계절 
문득 멈춰서서 다시 보면 
나는 혼자인 나 
가을은 제각기 혼자인 계절 
신이시여 
얼굴을 이리 돌리옵소서."

김남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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