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대교

언제나 그 자리에...

 

낮은데로 임하소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드리는 편지

찬미 예수님!


교황 성하가 이 땅에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었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성하께서 이곳 광화문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시기 이전에 우리가 이 땅에서 지금 받고 있는 고통에 먼저 귀 기울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가운데 신자인 자도 신자가 아닌 자도 있습니다만, 여기 핍박받고 소외된 우리들은 우리가 울부짖을 때에 응답하시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습니다. 양떼를 잃은 목자인 당신께서도 단 한 마리 양을 찾는 일에 전력을 다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을 닮아 한 명 한 명이 더 없이 소중했던 우리의 자식, 부모, 형제와 자매를 잃었습니다. 학교 친구들과 또는 가족들과 떠난 여행길이 이 세상에서 걸었던 마지막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탄 배가 왜 침몰했는지, 그리고 왜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식사를 중단했습니다. 침식을 잊고 지낸 지 넉 달이 다 되어가는 육신이 차츰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세운 이 나라에서는 진상을 덮으려 하고 우리에게 침묵을 종용하는 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습니다. 이웃의 곁에서 애통해 하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불의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교황 성하. 하느님 당신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정의로 우리의 궁핍한 처지를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 중 일부는 장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 명씩 한 명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자녀들 사이에는 어떠한 차등도 없을 테지만, 이 땅에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등급을 매겼습니다. 그 등급에 따라 활동보조인의 적절한 도움을 받을 방법이 사라졌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불에 타 죽은 이가 있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소중함을 알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이 죽음과 마찬가지여서, 죽는 길이 사는 길이어서 교회에서 말하는 크나큰 죄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기는 저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더 큰 등급을, 비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또 다른 등급을 매기는 자들입니다. 교황 성하. 저들에게 끊임없이 주었던 그리스도의 실천적인 사랑을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 중 일부는 일터에서 쫓겨났습니다. 광화문의 높은 빌딩에 자리를 잡은 투기 자본과 대기업의 탐욕은 식구를 먹여 살리는 가장이거나 자립을 이제 막 시작한 여성노동자거나 가리지 않고 집어삼켰습니다. 연대성의 원리에 기반해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만든 노동조합을 해체하려고 합니다. 케이블방송과 인터넷을 설치, 송출, 수리하는 노동자들이 한창 일해야 할 일손을 놓고 뙤약볕 아래 거리에 나와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교황 성하. 희망이 들어설 틈이 없어 절망하고 있는 저희에게 손을 내밀어 거리에서 함께하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교황 성하. 우리와 함께 울어주십시오.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들과 다 겪은 후에야 끝나게 될 우리의 시련을 위해 울어주십시오. 우리와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성하께서 집전하시는 미사를 치장한다는 이유로 저들이 우리를 광장에서 쓸어내는 일이 없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를 찾아와 주십시오. 익숙해지지 않는 우리의 고통을 위로해 주시고 길거리에 나와 탄원하는 방법밖에 찾지 못한 우리의 어리석음과 우리를 몰아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멈추지 않는 분노를 깨끗이 용서해 달라고 우리 주님께 청원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와 함께, 또한 교황 성하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2014년 8월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장애인, 빈민, 케이블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 일동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20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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